말씀묵상

한주간 말씀 묵상 4월13일 주간

4/13/20 잠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본절은 제물을 모으는 방법으로서 부지런하고 성실할 것을 권면 하기 위해서 부지런한 자와 조급한자의 결과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한자의 반대 개념은 조급한자가 아니라 게으른 자입니다. 그럼에도 본질에서 부지런한 자와 조급한 자를 대조하고 있는 것은 부지런한 자는 성실함과 진실함을 갖춘 의료원 자로 여길 수 있는 반면 조급하게 제물을 모르는자는 제물에 눈이 어두워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는 악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한 자는 그 세운 바른 계획에 따라 근실히 일하여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풍성한 재물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조급반 저는 제물을 모으는데 급급하여 분별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며 그로 인하여 궁핍함에 이렇게 되고 필경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일이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지런하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고 악하나 풍요한 삶을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본절은 대체적으로 그러하다는 사실을 지적한과 동시에 비록 이 세상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내세는 완전하게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소명과 사명이 있습니다.  선생님, 학생, 주부, 직장인, 사업가, 등등… .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내세가 약속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성도들 입니다. 모든일에 부지런하며 막달라 마리아 처럼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4/14/20 잠 21: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본절은 5절에서 언급한 조급한 자의 구체적인 사례로서 조급하게 제물을 모으는자는 분명 남을 속이고 피해를 주면서 부정하게 재물을 모을수 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결국 그의 결말은 곧 멸망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안개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헛됨을 상징합니다 . 악인이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곧 흩어지는 안개와 같이 헛되고 무익한 행위라는 말입니다.

죽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서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단순히 헛된 행위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임을 교훈해 줍니다. 죽음이란 표현은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은 것에 상응하는 형벌로서 멸망에 이르게 됨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는 이와 같이 거짓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파멸에 빠뜨리는 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바울은 속이는 것이 잠시동안의 형통을 가져올지 모르나 결국 자신을 파멸이라는 올무에 빠뜨리게 된다고 말씀 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속이는 유혹에서 우리는 항상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는 죽을 인생이 아니라 영생을 소유한 복된 성도들 입니다. 헛된 제물을 위하여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끌지 말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에 순종 하면서 항상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4/15/20 잠 21:7-8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 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 함이니라 죄를 크게 범한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7절 말씀은 악인의 멸망과 그 멸망의 원인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악인의 폭력성은 약자의 소유를 착 취함으로서 잠시 번역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원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강포(violence)라눈 말운 ‘파멸시킨다’ ‘황폐 시키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파괴적인 범죄행위와 그 결과 발생하게 되는 황폐화된 상태를 모두 말씀 합니다.  즉 이 단어는 폭력 그 자체를 가르침과 동시에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그 폭력은 다시 다른 폭력을 나으므로서 결국 그 사회는 전체적으로 완전히 황폐화 됨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미국에서 자녀들을 키울때도 폭력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자기를 제어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실수룰 할수가 있습니다.

8절 말씀의 죄를 크게 범하는 악인과 깨끗한 삶을 사는 의인의 상반된 운명을 ‘길’ 이란 상징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자에 관한 그의 길은  곧으니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처럼 보이며 적당히 거짓을 행하고 위기를 모면하는 삶이 더욱 쉽고 평탄하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면 출세 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에 곧고 탄탄대로를 가는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13 14절 말씀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음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넓어 보이고, 평탄해 보이고, 곱게 보이는 길이 오히려 그 인생을 패망으로 몰아넣는 지름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은 지금까지 걸어온 우리의 길이 과연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영적인 눈을 바로 뜨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일 그 길이 구부러져 있다면 지금이라도 방향을 돌려 그리스도께로 향함으로서 그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씻어내고 우리의 구부러진 길을 곧게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곧은 길을 달려 왔다면 앞으로도 마음을 늦추지 말고 더 굳게 믿음으로 주님을 붙잡고 의와 진리의 길을 감으로서 생명과 영광의 거룩한 길을 달려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4/16/2020 잠 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9절 말씀은 다툼을 일으키는 우매한 여인과 사는 괴로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움막이라는 말은 ‘지붕’ ‘집 꼭대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corner of the roof로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집 지붕은 경사진 것이 아니라 평평 했기 때문에 사람이 올라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비와 이슬을 가릴 수 없고 한낮의 폭염과 밤의 냉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본절은 가정생활에서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부부가 화평하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으면 초가삼간도 천국 같이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간의 분쟁과 다툼으로 화평이 깨지면 그 집에 아무리 많은 물질이 있다 해도 그 모든 것은 겉치레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아무리 좋다해도 이것을 화목함 보다 결코 앞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쳐 줍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부모들이 재택 근무를 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가정에 많은 불화들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부부와 또는 자녀들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작은 일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서지기 쉬운 환경입니다. 우리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은 주님 안에서 화목한 가정 생활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투며 갈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님을 오늘 본문 말씀은 가르쳐 줍니다. 가족간에  대화를 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복된 시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조금 더 인내하며 성숙한 자세로 가족들을 대할 때 이번 기회가 가족들과 더욱 친숙해지고 서로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행복한 가정을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화목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롬 5:10-11)

 

4/17/20 잠 21:10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10절 말씀은 악인이 본성적으로 타인의 재앙을 원한다는 점과 그로 인하여 가난한 이웃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못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원하나니’ 라는 말을 통하여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악인의 심성을 단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악인의 습성을 따라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결과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해당하는 말은 ‘영혼’ ‘사람’ ‘생명’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의미는 마음의 상태로서 욕망을 뜻합니다. 악인의 마음은 그가 지속적으로 얻고자 열망하고 고대하는 마음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것이 곧 악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악을 향해 있고 악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 모든 행동은 악을 지향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악인들은 자신의 악을 행할 뿐만 아니라 그 이웃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 합니다. 악인의 이웃이 악인으로부터 실제적인 은혜나 도움을 입지 못함을 나타닙니다. 악인은 이웃을 돕기는커녕 그의 내면에 조금의 긍휼함을 발견할 수 없는 무자비하고 냉철한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악인의 삶은 자기도 불행하고 가족도 행복하지 못하고 이웃까지 같이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나의 마음속에 죄악된 모습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떨때는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남의 불행을 기뻐하기도 합니다. 또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이제 성령님의 은혜로 날마다 성화 되고 거룩하여져서 진심으로 선을 추구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이웃에게 덕을 끼치는 우리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나의 아내이고 자녀이고 남편이고 가까운 친지 들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시애틀 찬양교회 우리 성도들입니다.  늘 악을 미워하며, 악에서 떠나므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의로운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4/18/20 잠 21:11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하리라’

본절은 그 거만한 자가 벌을 받는 결과를 어리석은 자와 관련시켜서 말씀합니다. 거만한 자는 스스로 잘난 체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자를 일컫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은 언제나 바르며 형통할 수밖에 없다고 자부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거만한 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벌을 받게 될 때 이러한 거만한 자의 생각에 영향을 받았던 어리석은 자들이 경성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순진하여 타인에게 잘 속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만한 자들이 스스로 잘난 체 하여 남을 업신여길 때 그들의 삶을 동경하며 본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만일 거만한 자들이 그들의 그만 함으로 인해 벌을 받게 된다면 순진한 자들은 그만한 자들의 삶이 결코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유익을 가져오게 됩니다.

한편 지혜로운 자들은 타인의 훈계를 통해 지식을 얻기보다는 스스로 교훈을 통해 지식을 얻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교훈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취하게 되어 그 같은 일을 계속 하므로 더더욱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을 나타냅니다. 본절은 이처럼 교훈을 통하여 배우게 되고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들의 보편적인 특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바이러스로 인해서 미국과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들은 하나님의 엄중함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잘못이 있으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키며 나아가는 겸손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엄위 하심을 깨닫고 늘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한주간 말씀 묵상 4월6일 고난주간

4/6/2020 눅 22:1

‘유월절 이라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땅에서 해방될 때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사자를 보내서 애굽 장자를 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음의 사자가 지나쳐 갔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 설주에 발랐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지나쳐 간 것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제의 날이 되었습니다 430년 동안 지속되어 온 노예의 사슬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감격스럽고 즐거운 유쾌한 민족의 명절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예표입니다. 그 실체는 예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유월절이 가까워오고 있다는이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바로 진정한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번 유월절에 죽음의 사자가 예수님을 지나쳐 가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유월절을 앞두고 예수님은 심히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신인 동시에 인간 이셨던 예수님께서도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의 고통은 피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결코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의 뜻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유월절 어린 양의 길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유월절 어린양이 걸어갔던 그 죽음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죄의 종으로 매였던 사망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수많은 어린양들이 그들의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의 골짜기를 무사히 통과 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 제단에 유월절 희생양으로 바쳐서 당신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죄 가운데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참 자유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죽을지라도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어린양 예수님께 진정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4/7/2020 눅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더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였더니’는 과거형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연약하여 실족 할 가능성이 있음을 아시고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 주신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가 믿음의 실패 후에 다시 믿음에 견고하여 신앙을 지키고 또 초대 교회의 기둥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님께서 연약한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신 덕분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연약하고 실패하기 쉬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실족 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 기도를 해 주시는 까닭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또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셨습니다. 주님 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우리의 약점, 문제점, 실패를 아시고 그것을 위해 미리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기도는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험난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도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두려워 하는것과 우울한 것을 다 아시고 미리 기도해 주시고 지금도 기도해 주시고 앞으로도 기도해 주십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또 겸손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부인할 제자를 위해 기도해 주신 주님의 사랑과 돌보심이 놀랍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을 우리도 끝까지 믿으며 의지 하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 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 17:9)

4/8/2020 눅 22: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본문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때가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 가운데 정해진 가장 적합한 때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 이전에도 계속하여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유대 종교자들이 무리들을 무서워하여 예수님을 체포하지 못 하였습니다. 이제 유월절을 앞두고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배신자 유다를 앞세워 어두운 밤에 찾아와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체포하거나 죽이는 때는 바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허락 안에 가능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온 세상의 죄를 담당할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죽게 하기 위하여 당신이 정하신 바로 이때에야 비로소 체포되는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은 마치 사단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사단에게 잠시 그 세력을 허용하신 시간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체포 되셨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때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을 잡을 수 있는 때 일뿐만 아니라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는 시간임을 밝히 십니다. 여기서 유대 지도자들이  사단의 도구가 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 이라고 비난하던 자들이 자신들 스스로 사단의 도구가 되어 구세주를 체포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부당한 세력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바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심오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연단 시키시고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성숙 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악한 세력과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도록 허용 하십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훈련시키시고 성숙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시길 원합니다. 어두움의 권세 가운데 예수님은 고난 당하셨지만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앙이 한 단계 업 그레이드 되는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기도합니다.

4/9/2020 눅 23:22 -25

본문 말씀을 보면 여러 차례 예수님을 석방 하려고 시도했던 빌라도가 결국 무리들의 요구대로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하여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사실이 나타납니다. 빌라도의 이런 행동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우선 빌라도는 자기 관할 지역에서 소요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빌라도는 자기 지역에서 발생한 시끄러운 문제가 로마 정부에 보고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동기들은 결국 한마디로 빌라도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즉 빌라도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그리고 백성들로부터 인기를 위해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죄한 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메시아를 죽이는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이처럼 하나님의 원수 노릇하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요구를 무조건 충족시켜 주면 비록 일시적인 칭찬과 지지를 얻을 수는 있을지언정 장기적인 지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도록 내어준 불과 몇 년 뒤 그는 사마리아인들의 대학살 사건을 초래하게 되고 결국 로마로 소환되어 유대총독 직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결정을 내릴 때 비록 일시적으로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쳐 어려운 일을 당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고 지지를 보내게 됩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일에서 일시적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과 동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늘 사람들 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애를 썼다고 수없이 그의 편지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사람의 잘못된 결정으로 무죄한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이 고난주간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생각하며  그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항상 주님이 원하시는 결정을 하고 그런 자세로 생활하는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기도합니다.

 

4/10/2020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 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숨을 쉬는 운명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 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고통을 최고조로 느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견디기 힘든 수난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고통을 다 겪으시고 운명하기 직전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금요일 예수님운 운명하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그 저주를 다 받으시고 돌아 가십니다.  우리를 향한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인생들도 다 마지막 호흡을 하고 이 세상을 떠날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진실 하고도 간절한 신앙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비록 육신의 숨을 멈춰도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받아주실 거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영혼은 아침에 잠을 깨듯 하나님 품에서 다시 눈을 뜨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죽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신앙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살아 숨 쉬는 동안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고 섬깁시다. 그리고 인생의 길을 다 가고 운명의 순간을 맞을 그때가 이르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기도하면서 잠드는 저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  오늘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축되지 마시고 우리의 영혼은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다는 소망 가운데 담대하게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4/11/2020 눅 23:55 – 56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 하더라

예수님의 제자들 중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형벌을 받으실 때에 현장에 없었습니다. 죽기까지 주를 따르겠나이다 러고 소리쳤던 베드로를 비롯하여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인들은 예수님의 처형 장면을 비록 멀리서나마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도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매장에 둔 무덤을 확인하고는 장례의식을 위해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 골고다 언덕까지 끝까지 따라간 분들은 바로 이 여제자들 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의 신앙은 과감한 결단이 여기 있고 사소한 유익에 따라 고민하고 머뭇거리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용감한 것 같으면서도 정작 용기가 필요할 때 꽁무니를 잘 빼는 것이 남성들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잘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가 많습니다.그러나 한번 마음이 정해지면 그 마음이 쉽사리 변치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여자들은 한번 주를 따르고 섬기기로 하였으면 그 신앙이 좀처럼 변치 않고 지속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여성들의 훌륭한 신앙을 인정하고 배워야 합니다. 교회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은 앞에서 이끄는 남성들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지만 교회의 이모저모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봉사하며 주를 섬기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들의 신앙을 본받아 일편단심 주를 가까이 하고 섬기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침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나 허무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그 분의 죽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할 수 있었습니다. 곧 성소의 휘장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죄의 장벽이 제거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십자가의 희생입니까. 이제 우리들은 여인들처럼 주님을 끝까지 믿고 순종하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난관이 와도 어떤시련이와도 고난이 와도 주님을 따라가며 십자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한주간 말씀 묵상 3월30일 주간

3/30/2020 시편 119: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 새로운 한주도 주의 말씀으로 즐거움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환난과 우환을 이길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가죽 옷으로 입히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시면서 승리 하시길 기도합니다.

3/31/2020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껏 어느 달 보다 길게 느껴지는 한 달 이었습니다.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 우리는 매일 뒤로 물러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구원의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신앙인 들 입니다.  믿음의 용사답게 주님과 동행하며 하루를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4/1/2020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지혜와 힘이 인간중에 가장 높고 크다고 생각되는 왕들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그가 원하시는 대로 섭리히시고 주관하심을 본문은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의 손’

  1. 우주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이나 섭리
  2.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보호와 도우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놀라운 여호와의 손이 오늘 하루도 성도님들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4/2/2020 잠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2절은 사람의 판단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반면 하나님의 판단은 완전하고 공의로우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의존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사람은 가시적이고 외적인 행동이나 일의 결과만 보는 반면 하나님은 드러나지 않는 내적 동기와 목적까지 깊이 꿰뚫어 보십니다. 이런 놀라우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처지를 알고 계심을 믿고 힘든 가운데서도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찰하신다 – ‘무게를 재다(weigh)’ ‘시험하다(examine)’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마음의 무게를 잰다는 말씀입니다.

4/3/2020 잠 21: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의 백성의 삶이란 의와 공평을 행하는 삶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올바르게 제사드리는 일은 매우 중요함을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나 3절 말씀은 의와 공평을  제사와 비교하여 더 중요하게 여기며 그것을 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와 공평”이란 말은 보통 한 쌍을 이루어서 사용되며,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의 거룩한 삶을 상징하는 성경의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의 거룩한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사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시애틀 찬양교회 성도님들, 오늘 하루도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기도합니다.

4/4/2020 잠 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눈이 높은 것은 높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깔보는 ‘높은 눈’ 이라는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마음이 교만한 것은 어떠한 제한이나 규율에 예속함이 없는 무절제한 상태의 마음을 지칭하며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양 여기는 교만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마음이 교만하고 눈이 높다는 것은 그의 인격이, 곧 그 삶 전체가 전적으로 악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본문은 거만한 눈과 교만한 마음을 가진 악인이 현실 가운데서 번영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더욱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절대로 높은 눈과 교만한 마음을 가질수가 업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며 악에서 떠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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